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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비밀 안 최고 부자 록펠러

작성일 : 16.09.19 10:57 |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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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가정에 평범한 아이로 태어난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돈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았고, 또 그것을 불리는 방법도 누구보다 빨리 터득했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돈을 버는 재주였다.

    록펠러는 그런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함을 가졌다. 그것은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세 가지 약속을 지키게 했다. 첫째,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 둘째,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셋째, 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다였다. 그는 평생 말라기 310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개발해 나갔다.

    록펠러는 억만장자가 된 뒤에도 근검절약 정신으로 일기 쓰듯 평생 회계장부를 철저히 썼으며, 수입을 정확히 계산해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뒤에는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별도의 십일조 전담 부서에 직원을 40명이나 둘 정도였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9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 번도 빠집없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의 일생에서 약속의 말씀이자 가장 큰 유산이 되었던 것이다.

    록펠러는 십일조가 하늘나라에 복을 쌓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를 하나님이 30, 60, 100배로 자신에게 돌려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아예 사업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자선사업에만 전념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내는 것도 돈을 버는 일만큼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집중적으로 치밀하게 펼침으로 역시 록펠러답다는 평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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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나는 돈 버는 능력을 하나님으롭주터 받은 재능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하나님의 선물을 받은 나로서는 돈을 벌고 다시 늘려서 얻은 돈을 양심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쓰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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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미국 경제지() 포천은 미국 역대 최고 갑부로 19세기 석유 재벌 존 록펠러를 선정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개인 자산의 비율을 시대별로 산출한 결과, 록펠러는 사망 당시인 1937GDP1.54%에 해당하는 14억 달러를 보유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현재 세계 최고 부자인 빌 게이츠 재산의 3배가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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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록펠러는 1870'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공동 창업, 10여년 만에 미국 석유 산업의 95%를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철도 수송망을 장악, 경쟁 기업에 차별적 운송 요금을 적용하면서 경쟁 업체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합병·제휴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 내 석유 산업을 장악했다.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는 등 온갖 편법과 불법을 서슴지 않아 그의 재산에는 항상 '더러운 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원한을 산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는 항상 침대 곁에 총을 두고 잤다고 전해진다. 결국 미국 정부는 1911년 독점금지법(Anti-trust act)을 만들어 '스탠더드 오일'34개사로 쪼갰다. 그 결과 지금의 엑손모빌, 셰브런 같은 굴지의 석유 기업이 생겨났다.

    하지만 현재 존 록펠러는 '악덕 기업가'보다는 '위대한 자선사업가'로 회자된다. 막대한 기부를 하면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었다. 그가 살아서 기부한 돈은 53000만달러로, 미국 GDP에서 록펠러 재산이 차지했던 비중을 감안하면 현재 가치로 1280억달러(145조원)에 달한다. 1913년 당시 50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세계 최대 재단인 록펠러 재단(The Rockefeller Foundation)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록펠러 의학연구소, 시카고 대학, 록펠러 센터 등에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쏟아 부었다. 뉴욕 중심가 알짜배기 땅의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링컨센터 역시 록펠러 가문의 후원으로 세워졌고, 유엔본부 땅도 록펠러 가문이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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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펠러 가문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다른 명문가와 혼맥을 형성하면서 정계에도 진출했다. 존 록펠러 주니어의 둘째 아들 넬슨 록펠러는 공화당 출신으로 41대 부통령을 지냈다. 넬슨 록펠러는 수차례 대권에 도전했지만, 리처드 닉슨 등 공화당 유력 후보에게 밀려 대선 후보에서 낙마했다.

    부통령이 된 후에는 록펠러 가문의 막대한 재산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약화됐으며 1977년 결국 정계에서 은퇴했다. 넬슨 록펠러의 동생인 윈스롭 록펠러는 아칸소 주지사를 지냈다. 록펠러 가문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지만 존 록펠러 3세의 아들인 제이 록펠러는 민주당 출신으로 미 버지니아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제이 록펠러는 2년 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록펠러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좋은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행을 기억하고 그를 기뻐하셨을 것이며, 씨앗을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며, 아무 곳에나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풍요로운 대지인 하늘에 뿌리는 것이라는 점을 인류에게 확연히 보여준 첫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이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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